일이 잘 풀리지 않은 하루의 끝에 본인 전체가 무너진 듯한 감각이 드는 사람이 있고, 같은 상황에서도 일은 일대로 두고 다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개념이 자기복잡성이다.
자기복잡성이란
심리학자 패트리샤 린빌은 자기를 구성하는 측면이 얼마나 많고, 그 측면들이 서로 얼마나 독립적인지를 자기복잡성(self-complexity)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자기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본인을 여러 역할과 관계, 활동으로 정의하고, 그 정의들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본인을 '직장에서 책임감 있는 동료', '주말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오래된 친구 모임의 농담 담당', '부모의 차분한 자식'으로 두루 정의하고 있다면, 한 영역에서의 실패는 나머지 영역의 자기상을 그대로 두는 경향이 있다.
린빌의 1985년 원 연구는 참가자에게 본인을 묘사하는 형용사 카드를 여러 묶음으로 분류하게 한 뒤, 묶음의 개수와 묶음 사이의 형용사 중복도를 측정해 자기복잡성을 정량화했다. 묶음이 많고 묶음끼리 형용사가 적게 겹치는 사람일수록 자기복잡성이 높게 산출되었다.
한 영역의 사건이 전체로 번지는 이유
린빌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복잡성이 낮을수록 한 사건이 자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른바 spillover)이 크다. 회사 일이 자기 정의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람에게는 직장에서의 작은 갈등이 인생 전체의 무게로 번진다.
반대로 자기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같은 사건을 겪어도 그 사건이 자기의 한 부분에 머무른다. 회복탄력성의 차이는 의지의 차이가 아니라 자기 정의의 구조 차이에서 일부 비롯한다.
다만 자기복잡성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후속 연구들은 자기복잡성의 효과가 측정 방법, 자기 측면의 긍정·부정 성격, 측면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고했다. 단순히 역할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의미를 두는 다층적 자기 정의를 갖는 것이 핵심에 가깝다.
자기복잡성을 높이는 연습
자기복잡성은 타고나는 성격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며 조정되는 자기 정의의 형태다. 다음 네 가지가 일상에서 가능한 입구다.
- 역할을 의식적으로 분리해 적는다 — '나는 ~이다'라는 문장을 다섯 개 이상 써본다. 직업·관계·취미·습관·소속 등 결이 다른 항목이 섞일수록 좋다.
- 한 역할이 다른 역할을 침범하지 않게 둔다 — 일터의 평가가 가정의 자기상까지 흔들지 않도록, 두 영역 사이에 작은 의식(예: 퇴근길 산책)을 둔다. 이 의식은 역할 사이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 새 측면을 더한다 — 새로운 활동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의의 한 칸을 추가하는 일이다. 작아도 꾸준한 활동 한 가지가 자기복잡성의 기둥이 된다.
- 비활성 측면을 다시 깨운다 — 한때 본인을 정의하던 영역(악기, 글쓰기, 봉사 활동 같은)이 한동안 닫혀 있었다면, 그 영역을 작게라도 다시 여는 것이 새로운 측면을 만드는 것보다 빠르게 자기복잡성을 회복시킨다.
자기복잡성이 부담이 되는 경우
자기복잡성이 무조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측면이 너무 많으면 어느 영역에도 충분히 깊이 닿지 못한다는 감각이 생기기도 한다. 영역마다 본인에게 요구되는 행동이 충돌할 때 — 예를 들어 직장 일이 가족 시간을 잠식할 때 — 자기복잡성이 갈등의 진폭을 키우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복잡성을 늘리는 일은 측면의 개수만이 아니라 측면 사이의 관계를 함께 다듬는 작업에 가깝다. 어느 영역이 본인에게 안정의 닻이고, 어느 영역이 성장의 자리고, 어느 영역이 즐거움의 자리인지 한 번 정리해 두면, 같은 측면의 개수라도 각 영역이 다른 역할로 작동한다. 영역의 수가 아니라 영역의 의미 분포가 회복탄력성의 두 번째 변수다.
정리
회복탄력성의 차이는 마음의 강도가 아니라 자기 정의가 얼마나 다층적인지에서도 비롯된다. 같은 사건을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은 한 영역의 일로 다루고, 어떤 사람은 자기 전체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그 차이의 한 축에 자기복잡성이 있다.
오늘 시도해볼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이다'로 시작하는 자기 정의를 다섯 줄 적어 보고 그중 가장 비어 있는 한 칸을 천천히 채우기로 정해 두는 것이다.